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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화산업/장인이야기

갑피_이종천 (1952년생, 실비제화 대표) 경력 43년

성수수제화타운(www.ssst.co.kr)입점기업 실비제화  갑피_이종천 (1952년생) 경력 43년

 

“내가 하견습 시절에는 주로 칼만 갈았었지요. 일을 배우면서 선배들 에게 망치 손잡이로 맞기도 했어요. 망치는 미국 서부의 총잡이가 권총을 돌리듯 각자 돌리는 방법이 있답니다”

 

갑피는 구두의 윗부분이다. 소재는 가죽이 가장 많이 쓰이고, 종류나 가공법에 따라 다양한 문양과 색상, 재질감을 갖고 있어서 기능성뿐 아니라 미적인 만족도를 높여준다. 디자인, 패턴, 재단, 조립이 갑피의 공정에 해당한다.

 

이종천씨의 고향은 제주도다. 작은 아버지가 구두 계통에 종사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구두를 배웠다. 17살 때 대흥
양화점에서 시작했는데, 제주도에 있던 40개 정도의 양화점에서 두 번째로 큰 곳이었다. 대흥에서 알던 분 연락
으로 서울 종로 세운상가 인근 성덕양화점으로 일터를 옮겼다. 하견습은 주로 칼만 갈았다. ‘칼 몇 년 갈았냐?’ 가
연차를 의미했다. “하견습 시절에는 풀칠, 칼갈이, 가죽깎는 일을 주로 했고, 중견습이 돼서는 테이핑과 접음질, 도
리치는 것을 배웠어요. 상견습은 중창 자르고, 마도매라고 조립을 했고, 미싱을 타면 이제 선생이 되는 거지요. 선
생이 되면 하견습, 중견습을 데리고 다니지요.” 상견습은당시 공무원 월급보다 2~3배 많이 받았다. 작업장은 험했
지만 퇴근할 때는 명동신사가 따로 없었다. 미싱은 기술을 제대로 익히는데 6~7년이 걸렸는데. 옛날 미싱은 발과 동
시에 움직여야 하니까 시일이 많이 걸렸다. “20살 때 상견습을 떼고 ‘선생’(갑피사)으로 떨어졌어요. 어린 나이에 된
거지요. 한창 때는 집에 본내는 종이와 골을 갖고 가서 그림 그리고 잘라서 맞춰보고 그랬어요” 첫 패턴으로 부츠를
만들어 신었다. 부츠는 돈 꽤나 들었기 때문에 아무나 신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989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하기도 했다. 내 신발, 실비라는 이름을 놓고 파는 자부심으로 구두 일을 계속하고 있다.

 

실비제화(실비콜렉션 대표 : 이종천)  : http://www.iloveshoes.org/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