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구두산업과 성수동수제화타운(www.ssst.co.kr)
1920년 -
1960년 서울역 염천교
중구 의주로 2가 염천교 일대 구두점들의 밀집이 시작이다. 1925년 경성역(현 서울역)이 생기면서 화물을 임시 보관해두는 창고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창고로 들어갈 피혁들이 밀거래 되고,잡화상과 함께 구두수선점이 하나 둘씩 생겨났다.
해방 후 미군들이 중고 전투화(워커)로 훌륭한 신사화를 만드는 가게가 문을 열면서 번창하였다.
1960년 -
1980년 명동
명동은 예로부터 우리나라 금융과 경제의 중심지였고, 명동의 싸롱화와 양복점은 연예인,재벌들의 에피소드로 유명세를 탔다. 양복, 양장,양화, ‘양’자 들어가는 가게 빼면 명동 땅값이내려간다는 말도 있었다. 1970년대 상공부에서는 세계우수상품시작품 경연대회를 개최했다. 명품을 따라잡기 위해 장인들로 하여금 외국의 제품을 유사하게 만들어 구두 및 봉제산업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였다. 에펠, 신일, 알프스, 베니스, 계명, 칠성, 금강제화, 비제바노, 엘리자벳, 잉글랜드 등 싸롱화집이 번성했다. 1980년대 공무원 월급이 35만원 하던 시절, 상급 기술자의 경우12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렸다. 싸롱화가 세일을 하면 경찰이 나와 질서유지 단속을 해야 할 정도로 긴 줄이 늘어섰다.
1990년 -
2013년 현재 성수동
명동이 공장과 매장을 함께 운영하는 싸롱화의 중심지였다면 서울시내에서 구두공장의 밀집지역은 금호동이었다. 1960년대 말 금강제화 생산공장이 금호동 지역에 들어서면서 이 일대에 다양한 구두 관련 하청공장들이 자리잡았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금강제화 생산본부가 부평으로 옮겨가면서 금호동 일대 구두 관련 공장들이 흩어지게 되었다. 성수동에 구두공장들이 몰려든
이유는 금강제화 본사가 있으면서, 성남에 있는 에스콰이어, 엘칸토 생산공장과도 가까워서였다. 영등포, 만리동 등 서울 다른 지역의 구두공장들이 점차 줄어들어가는 상황에서 성수동에 구두공장들이 밀집되었고, 가죽과 악세사리, 부자재 등 구두재료 업체들도 늘어나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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